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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칼럼] 政治란 用人의 藝術이다(44)

  • 기사입력[2018-04-16 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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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사방팔방 / 정치란 용인의 예술이다

어리석은 통치자는 간신(奸臣)을 등용(登用)한다

의심스러운 자는 등용하지 않으며 등용한 자는 의심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간신과 군주 사이에는 골육의 정이 없다. 간신이 기꺼이 군주를 받드는 것은 사실 자기가 군주가 될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시시각각 군주의 마음을 엿보다가 군주의 나태와 오만을 파고들어 사욕을 채우고 군주의 권력을 잠식한다. 심지어 군주의 권력을 찬탈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간신은 군주의 처와 자식의 관계를 이용하여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조나라 공자 성(成)을 보좌하던 이총(李悤)은 성의 형인 공자 장(章)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틈을 이용하여 조나라 무녕왕(武寧王)을 감금했다. 얼마 후 공자 장이 피살되자 이총은 공자 성과 함께 음모를 꾸몄다.

“군주를 감금했으니 지금 당장 철병하면 우리는 극형에 처해질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궁궐 안의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무녕왕만 홀로 남겼다. 궁궐 안에 갇힌 무녕왕은 먹을 것이 없어서 참새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이어갔다. 그는 그렇게 삼 개월을 버티다가 사구궁(砂丘宮)에서 굶어죽었다. 그 후, 공자 성은 사리사욕을 도모하다가 이총에게 이용되어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말았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도 이처럼 믿을 수 없는데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역사를 보면 뜻밖에도 간신이 등용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수조(竪刁)와 역아(易牙)를 등용한 것이 좋은 예다. 그들은 작은 이익만을 탐하고 법과 도의를 망각했다. 현명한 신하를 제거해 군주를 기만했으며 조정을 어지럽혀 혼란을 조장했다. 결국 환공은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간신이 등용되는 것은 군주의 관찰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군주뿐만 아니라 현명한 군주도 간신을 등용하는 바람에 낭패를 보곤 했다. 환공은 관중을 등용해 패자의 위업을 이룬 인물이었지만 수조, 역아를 등용한 탓에 조정을 망치고 자신도 죽어서 시체를 수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간신이 중용되는 것은 군주가 권모술수로 그들을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래 군주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고 대중의 여론만을 중요하게 살핀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를 총애하고 사람들이 비판하는 이를 증오하는 것이다. 그래서 군주는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간신에게 나라의 대권을 넘기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간신들은 서로 안팎으로 결탁하는 한편, 녹봉과 작위를 미끼로, 권세를 위협수단으로 삼아 알게 모르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이익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재난을 안겨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익을 버리고 화를 택하겠는가? 자연히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귀순하여 그들을 찬양하는 소리가 군주의 귀에까지 들릴 것이며, 이때 군주는 틀림없이 그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말 잘하는 자들을 각지의 제후에게 보내 돈으로 매수하고 명령으로 협박하여 자신들을 칭찬하게 함으로써 군주가 한층 자신들을 믿게 만든다. 결국 군주는 그들에게 높은 관직과 후한 녹봉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간신의 권세가 강해지면 파당도 늘어나게 마련이며,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군주는 작게는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크게는 나라와 목숨을 잃는다. 이런 지경에 이르면 설사 군주가 잘못된 등용의 폐해를 깨닫는다하더라도 사태를 돌이킬 방법이 없다.

간신과 충신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이 만든다. 어느 시대에는 적에게 항복한 장수가 역적이 되지만 어느 시대에는 더 큰 참화를 막은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다. 진정한 위정자라면 이러한 기준에서 참모들의 잘잘못을 분별 있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독재자가 된 건 권력에 아첨하는 간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설속의 인물이지만 아서왕이 빛나는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이상에 목숨을 던진 원탁의 기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참모나 아서왕의 기사들이나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한 것은 똑같지만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이처럼 간신과 충신의 차이는 외형적인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추종하느냐에 있다.

‘가치(價値)’를 던져주는 것은 위정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간신을 만드는 것도, 충신을 만드는 것도 모두 위정자의 책임이다. 모든 리더가 최고의 참모를 뽑고 싶어 하지만, 최고의 참모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는 인재를 가리는 일에 있어서야 위정자의 책임이 더욱 막중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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