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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2018-10-09 09: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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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한 벽면에 '한글' 꽃장식이 되어있다. 2018년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맞는 해 이다./뉴시스

프리랜서 오지연(25)씨는 이런저런 대외활동으로 바쁘지만 1주일에 한 번, 2~3시간은 꼭 시간을 낸다. 한글 캘리그라피(Calligraphy)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연습 한 달째인 오씨는 "처음에는 캘리그라피를 배워 백화점 문화원 같은 곳에서 용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점점 캘리그라피 자체에 빠지고 있다"며 "익숙했던 한글의 자음과 모음도 모두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그린 글자이미지를 뜻한다. 연필, 볼펜, 붓 등 다양한 도구로 마음에 드는 글귀나 단어를 표현한다. 본래 서구에서 시작한 개념인 캘리그라피가 근래 한글과 부쩍 가까워졌다. '예쁜 손글씨', '개성 있는 글씨체'를 가지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한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인 고재형(28)씨는 '악필 교정'을 목표로 입문한 경우다.

"어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서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 글씨가 너무 어려 보였어요. 평소에는 매일 키보드만 두드리니 제 글씨를 마주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죠. 타자가 빠른 것이 큰 자랑이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글씨를 멋지게 쓰는 건 자랑이 되는 세상이 됐으니 글씨로 내 개성을 한층 돋보이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문했습니다."

그렇게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것이 지난 2016년, 벌써 4년이 됐다. 이제 고씨는 부업으로 캘리그라피 강사로 활동한다. 수업은 주 1회, 2시간 총 8주 과정으로 진행한다. 5~6명 정도로 구성된 반을 분기별로 3~4개 정도 운영한다.

고씨는 "초기에는 주로 캘리그라피라는 개념을 알거나 들어본 사람들이 수업에 참여했다면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옛날에는 '예술'의 영역에서 캘리그라피가 취급됐었죠. 그런데 요즘은 붓펜과 같은 도구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캘리그라피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도 많아졌어요. '취미'의 영역으로 한층 가까워진 거죠.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고나 할까요. 보통 20~30대 여성분들이 많은데, 종종 남성분들도 악필 교정을 목적으로 오시곤 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캘리그라퍼로 활동할 수 있는 민간자격증도 급증했다. 사단법인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에 따르면 2018년 4월 기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캘리그라피 관련 자격증 발급기관은 223개에 이른다.

응시인원도 늘고 있다. 연도별로 총 3~4회 실시하는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캘리그라퍼 자격증 시험의 응시 인원은 2015년 초까지 회당 100명을 밑돌았다. 그러나 123명이 응시한 2016년 치러진 6회 시험부터 수험자가 꾸준히 증가해 2017년 10회 시험에는 216명이 응시했다.

KBS에서 33년간 디자인 그래픽 업무를 맡아 '인간극장', '개그콘서트', '용의눈물' 등의 타이틀을 직접 제작한 이일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협회장은 "방송국 재직 당시만 해도 '캘리그라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주로 직업적인 부분에 한정돼서 사용됐다"며 "지금은 일반인들의 취미는 물론, 제품 이름이나 건물 간판 등 상업적으로도 캘리그라피가 흔히 쓰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글 캘리그라피를 하는 이들은 한글의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 초성과 중성, 종성을 분류할 수 있는 특징이 한글 캘리그라피를 매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캘리그라피가 아랍과 서구권에서 발전된 것은 맞지만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는 단어의 특성상 알파벳보다는 한글이 조형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며 "또 올곧은 직선과 둥근 곡선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한글 자체의 아름다움도 캘리그라피가 추구하는 표현미(美)를 배가시킨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오씨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고 했다. 오씨는 "캘리그라피를 하며 원래 알던 것과는 다른 모양과 느낌의 한글을 만나게 된다"면서 "한글 자음 하나, 모음 하나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 쓴 문구는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이었어요. '꽃'의 쌍기역을 꽃잎처럼 표현하고, '꿀'의 'ㄹ'자를 흘러가도록 표현하면서 실제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어요. 글자지만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지요."
고씨도 '자유로움'을 한글 캘리그라피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라틴어 캘리그라피는 정확한 각도와 수평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반면 한글 캘리그라피는 획의 굵기 조절이 가능해 글자의 강약 조절부터 감정 표현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을'을 누군가가 조금 쓸쓸하고 외롭다고 느낀다면 얇고 가느다란 획으로 날카롭게 표현할 수도 있고,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을 표현하고 싶다면 조금 더 굵기를 주고 둥글둥글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죠."

고씨는 캘리그라피를 '나만의 개성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사자성어 중에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매일 키보드를 두드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손'으로 시작하는 글씨 쓰기는 각자의 삶에 또 다른 향기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 가까이에 있는 한글을 조금 더 멋지고 아름답게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개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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